김초엽 지음, 허블, 2019
요즘 메타버스가 한창 화두입니다. 인터넷 공간에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고 현실 세계의 인프라를 그대로 옮겨 놓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정말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공상 과학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모습이 구현되는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고자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상 과학 문학(SF)은 메타버스가 가지는 이미지와 유사해요. 예전에는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이 주요 주제였다면, VR 기기와 특수 제작 피복을 입고 사이버 공간에서 부(富)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혹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자원을 두고 벌이는 인간들의 싸움은 근래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SF를 단순히 최첨단 기술만 등장하는 판타지 문학 장르라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은 신기한 기술과 이론으로 가득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폭넓게 연구하며 인문학만큼이나 인간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학문입니다. 과학을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과 사회를 본질적으로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흥미롭고, 있을 법한 스토리를 통해 과학이 어떻게 인간과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소설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단편은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면서 유전자 조작 배아, 외계 생명체, 인간 사후 영혼의 보관 등 상당히 난해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굉장히 실감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관내분실”이라는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죽으면 매장이나 화장을 하지만 미래에는 죽은 사람의 시냅스 패턴을 분석해서 ‘마인드’라는 데이터로 만들고, 이것을 도서관에 보관해 놓는다는 설정입니다. 유족들은 도서관으로 찾아와 마인드로 구현된 고인의 정신 세계에 접속해 고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요. 이야기는 임신을 한 후, 돌아가신 엄마의 흔적을 찾아 도서관에 온 한 여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엄마의 우울증으로 그녀와 엄마는 일찍이 거리를 두게 되고, 성인이 된 후 집을 나오면서 남아있는 기억도 얼마 없습니다. 그러나 마인드에 접속할 수 있는 인덱스가 모두 삭제되어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후, 엄마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이끌림에 의해 엄마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이후, 가족이 생김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던 엄마의 옛 기억이 담긴 책으로 마인드를 찾게 되면서 주인공이 엄마를 사과도, 용서도 아닌 이해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 책을 쓴 김초엽 작가는 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과학을 깊게 연구했을 때 마주치게 되는 우주에 대한 의문, 또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생겨날지도 모를 문제들이 잘 녹아있습니다. SF는 단순히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 아닙니다. 딱딱한 텍스트 대신 흥미로운 이야기로 과학과 기술이 함유한 문제들을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죠. 이제 기술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들은 알고리즘으로 걸러지면서 나와 다른 생각들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메타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인간 관계의 정의를 바꿔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야하고, 그 해답은 과학과 사회를 연결지으면서 찾아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당장 눈앞에 놓인 공부 때문에 바쁘시겠지만, 그것들이 모두 인류에게 더 나은 가치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상으로 한국 SF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김초엽 작가의 소설 소개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여름 방학에 이 책을 읽으며 과학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