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저, 지식노마드, 2015
요즘 경제 이슈가 뉴스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크게 위축되어 있죠.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3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현상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투자를 줄였고 산업은 더더욱 위축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기업들은 거대한 규모의 자국민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무서운 속도로 경험을 쌓고 점점 더 발전된 제품을 내놓아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죠. 반면 한국 산업은 앞서 언급한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위기에 놓여있어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축적의 시간』은 지금 우리 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서울공대 석학들의 고민을 담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26명의 교수님들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한 시행착오를 거쳐 노하우를 축척해 나가는 과정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석학들은 기존의 트렌드를 따라가기만 하지 않고, 우리가 먼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주도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꿰뚫는 한 마디는 바로 “개념설계 역량을 키워라”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개념설계 역량”이란 산업계가 풀어야 하는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창조적 역량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정을 최초로 설계하는 역량, 화려한 디자인을 갖추면서도 안전성을 갖춘 교량을 설계하는 역량 등이 있죠. 글로벌 무대에서 기업들은 이러한 개념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개발된 기술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가령, 지난 7월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역량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누군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에 맞닥뜨려 풀이가 쉽게 떠오르지 않거나 잘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문제들을 복습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오랜 시간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풀이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현재 대두되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의 첨단기술들은 이러한 개념설계 역량이 중요한 영역이고, 우리 산업이 이러한 분야에서 다른 국가와 초격차를 이루기 위해서는 추격자의 마음에서 벗어나 선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님께서 KBS 신년특집 <다음이 온다>에서 “기술주권”에 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술주권이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에 꼭 필요한 전략기술을 주권적 의지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기술주권이 있어야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수 있고, 기술주권이 없으면 기술주권이 있는 나라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퍼즐에 비유하자면, 기술 주도권을 가진 국가는 퍼즐판에서 제일 처음 퍼즐을 놓고, 이후 기술 선진국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유의 퍼즐을 놓습니다. 기술 후발주자들은 이미 놓인 퍼즐 조각의 모양에 맞춰 지극히 평범한 퍼즐을 놓게 되지요. 평범한 퍼즐을 놓은 국가는 언제 대체될지 모르는 채로 불안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유의 퍼즐을 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바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도전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2004년에 미국 모하비에서 열린 DARPA Grand Challenge가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총 240km가 되는 거리를 주행해야 하는 대회였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대도 완주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차는 시작과 동시에 넘어지기도 했고 어떤 차는 코너링을 하는 와중에 벽에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이 대회를 “모하비의 대실패”라고도 했지만 이는 착각이었습니다. DARPA Grand Challenge 이후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오늘날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가 꽃을 피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를 통해 자동차 업계가 관심을 두던 주요 문제가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에서 “스스로 달리는 자동차”로 문제의 종류가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기술 선도국에서는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기술주권을 가지고 국가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은 기술 선진국이 제시하는 과제를 열심히 해결하는 추격자의 자세로 임해왔고 그 결과 50년만에 노동집약제품을 수출하는 국가에서 지식집약제품을 수출하는 국가가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만의 기술을 가져야 합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만의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과정은 더욱 빛날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지금 공부하시는 와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더라도 좌절하지 마세요. 이러한 어려움은 여러분만의 “축적의 시간”이 되어 스스로를 한층 더 발전시킬 충분한 계기가 되어줄 거예요. 나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멋진 공학도가 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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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저, 지식노마드,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