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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속에 가득 담긴 공학 한 모금

글.산업공학과 3 이재혁 편집. 조선해양공학과 4 백지원
그림 1. 거품이 올라온 아사히 슈퍼 드라이
여러분은 입시가 끝난 이후 무엇을 가장 하고 싶나요? 함께 고생한 친구들과의 해외여행, 운전면허 따기, 대학 가서 입을 옷 쇼핑, 연애까지!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지 않나요? 작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층 잠잠해지며 새로운 세상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이번 겨울에 고등학교 친구와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곳임에도 사회, 문화적으로 정말 다른 점이 많았답니다. 그 중,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와 공상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캔 뚜껑’ 입니다.

일본의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캔음료 중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다른 제품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어요. 옆에서 본 모양은 우리가 평소에 보던 캔음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마치 통조림처럼 캔 뚜껑 전체를 개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죠. 뚜껑 전체를 개봉하는 과정을 통해 생맥주처럼 많은 양의 부드러운 맥주 거품을 만들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어요.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구멍이 아닌 넓은 원형 테두리에 입을 대어 음료를 마심으로써 마치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고 합니다. 해당 제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유행이던 2021년 초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여 오프라인 문화와 단절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역할까지 했다고 하네요.
평소 당연하게 봐 왔던 캔 뚜껑의 모양에 변화를 주어 심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제품의 매력을 한층 더한 사례를 보니 몇 가지 궁금증이 피어올랐어요. 왜 대부분 캔의 모양은 음료의 종류와 무관하게 통일되어 있는 걸까요? 캔뚜껑은 어쩌다 지금과 같은 모양에 정착한 걸까요? 그리고 앞서 소개한 개방형 캔뚜껑은 어떤 원리를 통해 생맥주와 같은 거품을 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우리 생활 아주 가까이 함께 하고 있는 캔의 역사와 그 속에 가득 담긴 공학을 시원하게 들이켜 봅시다!
캔 속에 담긴 공학

첫 번째로는, 왜 대부분의 캔이 지금과 같은 형태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다른 형태에 비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해 봅시다! 우리가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금속 캔은 ‘스틸 캔’과 ‘알루미늄 캔’ 두 종류가 있어요. ‘스틸 캔’은 강철에 주석을 도금한 합판으로 외형을 구성하며 마개 부분만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이 소재는 강도가 매우 높아 외부 충격에 강한 데다가 가공성도 뛰어나서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만드는 데에 용이해요. 또한 알루미늄 캔에 비해 재활용하기에도 좋고 제조과정 중 필요한 에너지도 훨씬 적어 친환경적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실제 산업에서 훨씬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알루미늄 캔’ 이에요. 탄산음료를 캔에 저장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은 강도도, 가공성도 아닌 바로 '탄성'이기 때문이죠. 알루미늄은 탄성 측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캔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림 2. 기체의 용해도와 온도, 압력의 관계
우리가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이유인 톡 쏘는 맛은 수용액 속에 녹아 있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 기체가 만들어 주죠. 용액 속에 녹을 수 있는 기체의 최대 양을 ‘용해도’라고 하는데요. 기체의 용해도는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온도가 높아질 때, 압력이 낮아질 때 감소해요. 용해도가 감소하면 이산화탄소가 수용액 밖으로 튀어나가면서 탄산감이 줄어들겠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량의 질소를 고압으로 넣어 캔 내부의 압력을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캔 음료를 저장하거나 이동하던 중 온도가 높아진다면 이런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가 기화될 거에요. 그러면 음료의 맛을 버릴 뿐 아니라 캔 내부의 압력이 과도하게 높아지게 되겠죠. 이런 특징을 가진 탄산음료가 탄성이 부족한 스틸 캔에 담겨 있었다면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용기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날 겁니다. 이를 방지하고자 우리는 탄산음료 저장에 알루미늄 캔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재료의 물성 이외에도 정역학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 안전한 용기를 만들 수 있어요. 압력을 가장 많이 받는 밑면을 오목하게 만들어 넓은 면적에 압력이 고르게 퍼질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추가적으로 스틸 캔은 폭발 가능성이 있는 음료를 담지 않기 때문에 알루미늄 캔과 달리 평평한 용기 바닥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이유로 인해 탄산음료를 저장할 때는 알루미늄 캔을 사용하고 탄산음료가 캔음료 시장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알루미늄 캔이 시장의 전체 흐름을 이끌게 되었어요.
그림3. Pull-Tab 방식의 옛날 캔 뚜껑
캔 뚜껑에 숨은 공학

1959년 미국, 에멀 프레이즈는 따개를 사용하지 않고 손의 힘만을 이용하여 캔을 따는 방식을 처음으로 고안해냈어요. 그가 발명한 캔은 ‘Pull-Tab’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손잡이를 위로 당겨서 접합부를 끊어내어 뚜껑을 열어주는 방식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똑같이 압력을 이용하지만 뚜껑의 날카로운 면이 캔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여 더 안전해진 ‘Pop-Top’ 방식으로 발전하게 돼요. 현재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캔 제품은 이 방식을 기반으로 외형이 형성되었어요. 특히 이 방식은 1종 지레, 2종 지레의 원리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해서 캔 사용에 들이는 힘도 줄여주죠. 서울대생의 영원한 친구 데자와의 뚜껑을 열어 보며 캔뚜껑에 숨은 공학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그림 4. 캔뚜껑 각 부분 명칭
설명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주목할 캔뚜껑의 각 부분들을 [그림 4]에 적힌 것과 같이 ‘누름부’, ‘연결부’, ‘손잡이’라고 부를게요.
그림 5. 캔뚜껑 여는 과정 중 2종 지레(좌), 1종 지레(우)의 원리 적용
처음 손잡이를 들어올릴 때는 2종 지레의 원리가 적용돼요. 누름부가 캔 뚜껑 표면과 닿아 받침점이 되고 연결부가 작용점이 되어 힘이 가해져요. 우리가 손잡이에 가한 힘보다 더 큰 힘이 연결부에 가해짐으로써 연결부의 뒷부분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며 뚜껑에 구멍을 내요. 이때, 캔 속에 가득 차 있던 기체에 인한 내부압이 연결부를 들어올리는 것을 도와 연결부가 받침점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구멍이 생긴 후에는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와 캔의 내부압이 낮아져서 이후 최종적으로 캔뚜껑을 개방하는 데에 드는 힘을 줄여줘요. 만약 이런 작용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가두기 위해 적용된 아주 높은 내부압을 손가락의 힘만으로 이겨내야 했을 거에요.

이후부터는 1종 지레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연결부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며 받침점으로 변해요. 1종 지레는 마치 시소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데 2종 지레와 달리 작용점에 가하는 힘과 힘점에 가해지는 힘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죠. 이 덕분에 누름부가 캔뚜껑 내부를 향해 힘을 가하게 되고 캔뚜껑의 구멍 부분을 강하게 눌러 안쪽으로 밀려 들어갈 수 있게 해요. 덕분에 우리는 날카로운 부분을 캔 안으로 넣어줌으로써 안전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되죠. Pop-Top 방식은 이와 같이 뚜껑 개방에 드는 힘도 줄여주고 안전도 챙겨주기에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캔음료에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캔음료의 원리와 유래에 대해 함께 알아봤어요. 그렇다면 글 초반 언급했던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어떤 이유에서 기존 음료들과 다른 모양의 용기 형태를 택했을까요? 앞에서 설명했던 원리를 조금만 응용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평소 마시던 탄산음료들은 이산화탄소 기체를 최대한 음료 속에 가둬 두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캔뚜껑을 개방하기 전이나, 개방한 이후 모두 말이죠.

‘아사히’는 여기에서 살짝 생각의 전환을 주었어요. 캔뚜껑을 여는 순간, 수용액이 이산화탄소를 일부러 많이 방출하도록 만들었죠. 탄산음료를 열심히 흔들고 이의 뚜껑을 연다면 엄청난 양의 거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겠죠. 탄산음료를 흔들 때 증가한 탄산의 운동에너지가 이산화탄소 기체로 변하는 화학반응에 대한 활성화 에너지로 쓰이며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기체 상태로 방출되는 겁니다.
그림 6. 이산화탄소 기체 발생 반응 경로에 따른 에너지 변화
‘아사히’는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마치 통조림처럼 윗부분 전체를 개방하는 캔을 만들었어요. 윗부분 전체를 개방하며 생긴 마찰이 내부 음료의 에너지를 높여주었고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 기체가 많이 방출될 수 있게 했죠. 뿐만 아니라, 음료의 넓은 면적이 한 순간에 외부 공기와 접촉하며 급격하게 온도는 올라가고 압력은 낮아지게 했어요. 이렇게 했을 때 기체의 용해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기체를 많이 방출시킬 수 있죠. 탄산음료를 흔든 뒤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음료를 마시고자 할 때는 병뚜껑을 조금씩 조심스레 열게 되잖아요? 놀랍게도 이런 원리들을 반대로 적용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 것이죠.

우리가 편의점, 마트, 식당 등 많은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캔음료의 형태는 오랜 기간 정형된 모습을 유지해 왔어요. 그러나 아사히는 정형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이에 맞는 음료를 만드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고정된 프레임 자체를 바꾸고자 시도했어요. 이 시도는 아사히에게 큰 매출의 성장을 가져다 주었을 뿐 아니라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많은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특산품으로 꼽힐 수 있게도 해주었죠. 공상 독자 여러분들도 우리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사물의 원리와 효용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공학자의 자세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출처
그림 1. 직접 제작
그림 2.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Drink_can#Pop-tab
그림 3, 4, 5, 6. 직접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