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눈으로 영화보기

영화 <그란 투리스모>
게이머에서 실제 레이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글. 전기정보공학부 1 장준혁 편집. 화학생물공학부 2 이정환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은 레이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모 자동차 회사에서도 레이싱 특화 모델들을 내놓기도 했을 정도로, 레이싱은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듯해요. 오늘 알아볼 영화가 바로 이 레이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바로 일본의 '소니'사에서 제작한 <그란 투리스모>입니다.
그림1 영화 <그란 투리스모> 포스터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레이싱 게임 마니아인 주인공 '잔'이 실제 레이싱 선수가 되어 트랙을 달리기까지 일생과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는데요. 소니의 게임을 즐겨 하는 분이라면 <그란 투리스모>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레이싱 게임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영화는 게이머였던 잔이 실제 레이싱에도 잘 적응해 낼 정도로 현실적인 주행감을 선사하는 게임 <그란 투리스모>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또한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그 덕에 주인공이 겪는 여러 사건과 우여곡절이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현실을 가상으로, 동시에 가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레이싱에 숨어있는 여러 공학 요소를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에 적용했고, 게임이 다시 가상 공간 속 레이서를 실제 레이싱 선수로 키워낸 것이죠. 정말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현실에서 가상, 가상에서 현실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 영화를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에서 가상으로

영화 <그란 투리스모>를 탄생시킨 주역은 바로 동사의 게임 <그란 투리스모>입니다. 1997년 처음 개발되어서 오늘날 시리즈 7까지 출시되며 9,000만 장 넘게 팔린 이 게임은 레이싱 시뮬레이션의 대중화에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he Real Driving Simulator'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사용자로 하여금 현실적인 주행감을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이 설계되어 있고, 차체 및 주행 성능에 대한 수많은 튜닝 옵션도 제공하죠. 실제로 잔이 친구들과 게임을 하기 전에 “나 튜닝 좀 할게”라고 말하며 '다운 포스'와 '레이크'를 조절하는 모습이 영화 내에 등장합니다.

'다운 포스', '레이크'. 아마 대부분에게 생소한 레이싱 용어일 텐데요. 알고 보면 '마찰'이라는 생각보다 간단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다운 포스(Down Force)란 영어 이름 그대로 '차량을 바닥면으로 누르는 힘'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특히 고속 주행을 하는 레이싱 자동차는 공기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체가 유선형입니다. 이 경우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해 차체 윗면은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압력이 낮아지고, 아랫면은 속도가 느려지며 압력이 높아지죠. 결과적으로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양력'이 발생하여 자동차는 위로 떠오르려는 힘을 받게 됩니다.

그림2 베르누이의 원리와 양력

마치 비행기 날개가 비행기를 띄우는 원리와 흡사하죠? 비행기였다면 양력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이겠지만, 자동차는 '접지력'이 감소하여 자칫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접지력이란 차량의 타이어가 헛돌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지면과 타이어 간 마찰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요. 마찰력은 마찰계수와 수직항력에 비례하는 만큼, 양력이 증가하면 수직항력이 감소하여 접지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차량이 코너를 돌 때 접지력이 줄면 제어 불능에 빠지며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레이싱 차량에는 스포일러, 에어 댐, 디퓨저 등 부품이 부착됩니다. 스포일러는 차체 후면에 거꾸로 붙은 날개로, 비행기의 날개와는 다르게 지면 방향으로 양력을 만듭니다. 에어 댐과 디퓨저는 차체 하부의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데요. 에어 댐은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고, 디퓨저는 하부의 공간을 좁아졌다 확 넓어지게 하여 좁은 영역의 공기 흐름을 가속하고 이 부분을 저압으로 만들어 다운 포스를 형성하죠. 여기서 차체 하부의 기울기를 뜻하는 '레이크'를 달리하여 디퓨징 성능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접지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레이싱 차량에는 '슬릭 타이어'라는 특별한 타이어가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도로에서 마주치는 자동차의 타이어에는 표면에 '트레드'라 불리는 가로, 세로 홈이 있는데요. 슬릭 타이어는 표면이 이러한 트레드 없이 매끈하고, 타이어와 지면 간 마찰력, 접지력이 훨씬 큽니다. 이 때문에 더 높은 속도로 서킷을 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어의 마모 속도가 빠른 데다, 무엇보다 빗물이 타이어 사이로 빠져나갈 틈이 없어 우천 시에 사용하면 오히려 매우 미끄러우며 위험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림3 다운포스를 형성하는 부품들
그림4 슬릭 타이어
그림5 유리화된 브레이크의 모습.

게임 <그란 투리스모>는 실제 레이싱 중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까지도 잘 구현해 놓았는데요. 그중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브레이크 유리화(Brake Glazing)' 현상입니다. 브레이크 유리화란 바퀴의 디스크에 접촉하여 차량을 멈추는 브레이크 패드가 높은 온도 때문에 매끄러워지는 현상입니다. 이 경우 패드와 디스크 간 제대로 접촉이 이루어지지 못해 제동이 어려워집니다. 영화에서 실제 경주차를 몰던 잔이 사고를 냈을 때, '수천 번의 게임 속 경주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사고 원인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토로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이 사건 또한 실화를 기반으로 구성된 내용이라 하니, '게임이 이렇게까지 현실적인 요소들을 신경 썼다고?'라는 생각이 들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대목이었습니다.

가상에서 현실로

영화는 잔이 게이머에서 레이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겪는 우여곡절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실존 인물 '잔 마든보로'의 생애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인 게임 환경과 그것에 열광하던 한 게이머, 그리고 그의 피나는 노력이 한데 모여 '게이머 출신 레이서'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탄생한 것이죠. 잔의 이야기는 게임 <그란 투리스모>의 현실성을 홍보하기 위한 소니의 야심 찬 프로젝트, 'GT 아카데미'에서 시작합니다.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 속에서 최고 랭킹으로 실력을 입증한 플레이어에게 닛산 레이싱 팀에 소속되어 실제 전문 드라이버 아래에서 훈련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죠. 수천 번의 레이싱 게임 경험으로 다져진 잔은 예선을 치른 끝에 당당하게 'GT 아카데미'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림6 GT 아카데미

하지만 실제 레이서가 된다는 것은 게임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는 것에 비해 훨씬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차량 내에서 높은 온도와 강한 중력을 견디며 주행하기 위한 체력, 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스타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잔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꿈을 내버리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 작은 목표들부터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잔의 모습은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영화 내에서는 다양한 레이싱 장면이 등장합니다. GT 아카데미를 1등으로 이수한 잔에게는 FIA 라이선스 취득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의 서킷에서 경주하며 레이서로서 조금씩 성장해 나갑니다. 특히 프랑스 르망에서 펼쳐지는 '르망 24시' 경주는 관객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요. 이 경기는 팀 내 3명의 선수가 교대하면서 24시간 동안 도는 트랙의 횟수로 순위를 정하는 룰로, 현존하는 레이싱 경주 중에서 가장 어렵고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입니다. 잔은 레이싱 선수들에게 단순한 시상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르망 포디엄'에 서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여 고군분투해나갑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게임과 실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밌는 영화 <그란 투리스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꿈을 가로막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잔의 여정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여기에 레이싱 자동차의 엔진음과 트랙을 달리는 소리,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그 후 레이싱에 숨어 있는 다양한 공학적 원리를 파헤쳐보는 것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OTT 서비스로도 감상할 수 있는데요. 과연 잔은 레이서에게 가장 권위있는 자리로 여겨지는 르망 포디엄에 설 수 있었을까요? 결말이 궁금하거나,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분들은 한번쯤 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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