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상상(46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유명한 어류학자를 소개합니다. 이 책을 쓴 밀러는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우연히 데이비드를 알게 되고, 그가 남긴 저서를 읽으며 그의 인생을 파악해 나갑니다.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에 깊이 몰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등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한 캠프에 참여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캠프를 주최한 아가시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는 일이 자연에 숨겨진 신의 뜻을 해독해 내는 작업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를 통해 데이비드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작업에 대해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 후 데이비드는 전 세계 어종의 5분의 1가량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가며 사회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어느 날 지진으로 표본들이 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졌을 때도 절망하지 않고 식별할 수 있는 표본들에 실과 바늘을 이용해 이름표를 꿰매는 끈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 데이비드는 그 사건을 회고하며 '운명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물고기를 분류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 되었으며, 그가 남긴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더 나아가 데이비드의 악행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는 제인 스탠퍼드 사망 사건 당시, 독살이 강력히 의심된다는 의료계의 입장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데이비드가 독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 증거도 여럿 제시됩니다. 데이비드는 스탠퍼드 대학의 요직에 지인들을 특별한 절차 없이 임명하였고, 제인 스탠퍼드는 데이비드를 제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독살에 사용된 물질은 데이비드가 그의 저서에서 '가장 쓴 물질'이라고 소개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우생학'을 강력히 주장해서 수많은 여성이 불임 수술을 받도록 하기도 했지요.

인간의 의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신이 하는 일은 전부 옳다고 믿었던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벌인 일들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글쓴이인 밀러는 이런 데이비드를 비판합니다. 훗날 '어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어류'라는 분류는 스키를 타러 산에 올라간 사람, 산에 사는 호랑이, 토끼, 나무에 붙어 있는 곤충들을 '산류'로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자의적이고 과학적으로 의미 없는 분류임이 밝혀집니다. 글쓴이는 데이비드가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믿었던 생각에는 오류가 가득하다는 사실과, 그가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벌였던 많은 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과학자들의 오류

책에 소개된 데이비드 외에도 과학자 중에서는 과학이 세상을 해석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우월한 것이라고, 더 강하게는 종교나 철학 같은 다른 관점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여러 오류를 범했으며, 폭력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과학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의 흑역사를 확인해 봅시다.

먼저, 자연주의의 오류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사실은 어떤 가치 판단도 함축하지 않는데, 자연 법칙을 윤리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자면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므로 약자는 도태되도록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이러한 오류에 해당합니다.

한편,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다양한 형질 중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을 구분하고 인공적인 방식으로 우수한 형질의 증가를 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생학자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진화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 내린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거세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았음에도 당시 사람들은 과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생학을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데이비드 역시 우생학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어류를 분류하면서 우월한 형질과 열등한 형질이 확실히 구분되며, 열등한 존재로 퇴화하지 않으려면 자연을 관찰하여 우월한 형질을 모방하려고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경험적 증거가 뒷받침하는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과학자도 많습니다. 상대성이론의 근거가 된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고안했지만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마이컬슨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절대 불변의 진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상을 잘 설명하는 도구로서 개념을 고안해 내고, 실험을 통해 이를 검증합니다. 만약 가설과 어긋나는 현상이 발견된다면 기존의 이론을 대체하고, 더 강한 설명력을 가진 새로운 이론을 떠올립니다. 뉴턴의 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상대성이론을 도입한 것이 하나의 예시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실험적인 증거를 무시한다면 과학의 발전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런 증거를 제시하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면서 입을 닫게 만든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평생 바쳐 연구해 온 분야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해의 한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데이비드는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의 판단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해의 폭이 좁을 수도 있음을 잠시도 떠올리지 않은 채로 특정 인간은 부적합한 존재라고 판단 내리는 일에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자연에 확실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그에게 복잡한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여 인간 삶의 교훈을 얻고, 그런 교훈을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다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연은 특정한 위계와 같은 간단한 원리로 인식하기에는 몹시 복잡하고, 위계라는 것은 허상일 뿐이며, 관점에 따라 전체 구조를 다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 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다윈의 생각처럼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혹은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관점이 항상 우월하다고 믿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은 우리가 고안해 낸 개념들을 의미합니다. 개념은 구체적인 사항들을 추상화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개념의 사용자로 하여금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실재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들은 무시하기도 합니다. 사물을 개념을 통해서 인식할 때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복잡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학이 할 일은 복잡한 부분을 새롭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미 만들어낸 개념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강한 자기 확신을 경계하고, 내 세계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강한 의지를 발동시켜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타인을 포함한 많은 것을 해치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마음을 낳기도 하니까요.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생각에 정답은 없는 것 같지만, 모든 생각과 관점에 장단점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에게 어떤 관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길 바라며 기사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