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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이 바꾸는 세상

글. 산업공학과 2 최윤서 편집. 조선해양공학과 4 백지원
지난 8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자폭탄의 핵심 원리인 핵분열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원자핵이 쪼개지며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현상인데요. 이처럼 아주 작은 세계, 즉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20세기에 하나둘씩 규명되면서 인류는 전자기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활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특집기사에는 양자 기술이 활용되는 분야를 소개하고, 양자역학의 어떤 원리가 적용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양자역학의 원리가 활용된 기술과 기존의 기술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1. 기존 기술과 양자 기술 비교
1. 양자역학과 중첩

양자역학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규모의 거시적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분야는 ‘고전 물리학’이라고 하지요. 여기에서 ‘양자’란 물리량의 최소단위를 의미합니다.

양자역학에서 핵심적인 두 가지 개념은 바로 ‘양자화’와 ‘불확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열, 속도와 가속도와 같은 물리량을 숫자로 표현하다 보면, 실수가 무한한 것처럼 물리량도 무한한 수를 활용하여 연속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물리 세계에서 물리량은 모두 최소단위의 정수 배로 표현되는 값만 가질 수 있어요. 이러한 특성을 물리량이 ‘양자화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불확정성’이란 어떤 작은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에 기반한 특성입니다. 우리가 날아가는 새의 속도가 2m/s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새의 속도가 2m/s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아가는 새의 속도를 ‘측정’해서 2m/s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이렇게 모든 물리량은 ‘측정’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측정’ 과정에서 정확도에 본질적으로 한계가 존재하므로, 대상의 물리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특히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파동’과 ‘확률’ 개념의 근본 토대가 되지요.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고자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면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이러한 정확도의 한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 역학 이론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는 날아가는 축구공이 어디에 떠 있고 속도가 얼마인지 알아낼 수 있지요. 그러나 양자역학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입자들도 존재합니다.

물리량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불확정성이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미시적인 계에서는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직관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중 하나가 ‘중첩’이라는 현상입니다.
중첩이란 여러 물리 상태가 측정 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서 불확정성에 관해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한데 묶어 확률적인 값을 갖는 ‘양자 상태’로 인식합니다. 운동량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확률적인 값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지요. 알쏭달쏭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양자역학은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마주한 공학적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2. 양자 컴퓨터

양자역학이 현재의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 중 가장 유망한 것이 ‘양자 컴퓨터’입니다. 기존의 컴퓨터는 정보 처리를 위해 이진법 체계를 채택하여 정보 표현의 기본 단위로 ‘비트(bit)’라는 개념을 활용하는데요, 이때 ‘비트’는 두 가지 값을 갖는 상태를 말합니다. 흔히들 컴퓨터는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텐데요, 이때 ‘0’과 ‘1’이 바로 비트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것입니다.

어떤 물리적인 대상이 두 배타적인 상태를 관찰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비트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이 흐르는 것을 1,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을 0으로 설정하거나 전압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것을 1, 미만인 것을 0으로 설정할 수 있지요. 여기에 이진법 체계를 더하면 우리가 아는 수 체계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3이라는 숫자를 이진법으로 표현하면 ‘11’이므로, 전압의 ON/OFF로 구분되는 3개의 비트를 활용하여 ‘OFF-ON-ON’으로 표현할 수 있지요. 같은 방법으로 4는 ‘ON-OFF-OFF’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정보 표현의 기본 단위로 ‘큐비트’를 활용합니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에서 입자가 서로 다른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고안되었어요. 큐비트는 0과 1 두 가지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측정을 시도하면 그때 두 값 중 하나로 결정됩니다. 따라서 ‘00’, ‘01’, ‘10’, ‘11’은 비트로 나타내었을 때는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큐비트로는 모두 같은 표현입니다.
그림 2. 비트와 큐비트의 차이
양자 컴퓨터에서는 연산도 중첩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출력 결과도 중첩 상태로 주어집니다. ‘0’, ‘1’, ‘2’, ‘3’을 각각 두 번씩 더하는 연산을 생각해 볼까요? 기존의 컴퓨터에서는 ‘00’, ‘01’, ‘10’, ‘11’ 8개의 비트를 입력으로 받아 4번 덧셈을 해야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2개의 큐비트를 입력으로 받아 한 번의 연산을 하면 네 번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됩니다.

두 개의 물리량이 중첩된 입자라면 무엇이든 큐비트를 표현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연산 수행 과정 중에 큐비트의 중첩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연산이 완료되기 전에, 큐비트가 주변의 영향을 받아 하나의 값으로 결정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지요. 많은 양자 컴퓨터에서는 큐비트로 전자를 활용합니다. 전자의 두 가지 스핀 방향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업스핀을 ‘1’, 다운스핀을 ‘0’에 대응시킨다면 전자 하나만으로 큐비트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양자 컴퓨터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미시 세계에서의 현상을 활용하기에 기존의 컴퓨터나 알고리즘과는 다른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상용화될 수만 있다면 정보 처리의 다양한 분야에서 효율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여러 항목 중 내가 원하는 정보의 위치를 찾아내는 검색 알고리즘의 일종인 ‘그로버 알고리즘’입니다.
소프트웨어의 혁신, 그로버 알고리즘

그로버 알고리즘의 원리를 알아보기에 앞서, 기존의 컴퓨터에서 어떻게 검색 알고리즘이 동작하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검색은 수많은 상자에서 내가 원하는 쇠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를 알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8개의 상자 속에서 쇠구슬을 찾는 경우, 운이 좋다면 한 번 만에 쇠구슬이 든 상자를 찾아낼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8개의 상자를 모두 열어보아야 하지요. 컴퓨터공학에서는 이러한 연산에 드는 노력을 표시하기 위해 ‘복잡도’ 개념을 사용합니다. 앞에서 든 예시의 복잡도는 8이고, 상자의 개수가 16개, 32개, 64개로 늘어난다면 복잡도 역시 상자의 개수만큼 해당하겠지요. 이렇게 연산 횟수가 항목의 총개수에 비례하는 경우의 복잡도는 O(n)으로 나타냅니다.

이 과정을 좀 더 빠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여러 개의 상자를 쌓아서 한 번에 X-Ray 검사 장비에 통과시킨다면, 묶음 단위로 그 안에 쇠구슬이 있는지 여부를 빠르게 알아낼 수 있겠지요? 그로버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큐비트로 표현하면 한 번만 연산하더라도 여러 개의 값에 연산을 수행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합니다.
3개의 큐비트(QQQ)로는 ‘000’에 해당하는 0부터 ‘111’에 해당하는 7까지 총 8개의 값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확률의 관점에서 보면, QQQ는 1/8의 확률로 0부터 7 사이의 값을 갖는 상태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QQQ에 덧셈, 곱셈과 같은 연산을 수행함으로써 값이 출력될 확률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쇠구슬이 든 상자를 찾는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쇠구슬의 유무를 알아내기 위해 상자의 무게를 재는 것은 큐비트로 연산을 수행하는 것에 해당하고, 그 결과로 QQQ의 확률 분포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8개의 상자를 모두 모아 무게를 잰 다음 QQQ의 확률분포함수를 구해 보았더니 QQQ가 ‘011’을 가리킬 확률이 높아졌다면, 우리는 쇠구슬이 3번 상자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림 3. 연산에 의해 변화한 확률분포
3. 양자 보안

네트워크를 통해 장치 혹은 프로그램 간에 암호화된 데이터를 전송하는 ‘암호 통신’ 분야에서도 양자 역학을 도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암호 통신은 암호를 생성한 사람이 사용한 규칙, ‘암호키’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APPLE’이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알파벳 순서 상 3칸 뒤에 있는 알파벳으로 변환시키는 방식으로 암호화한다면 ‘DSSOH’가 됩니다. 이때 ‘3칸’이라는 정보가 암호 키에 해당합니다. 바로 이러한 암호 키를 정보를 생성해서 보낸 사람(송신자)와 암호를 해독할 사람 사람(수신자) 사이에서만 공유함으로써 보안을 유지할 수 있지요.

이렇게만 한다면 암호가 유출될 일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는 사실 ‘3칸’이라는 암호 생성 규칙을 송신자와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때 제 3자가 도청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양자 암호 키 분배 기술입니다.
그림 4. 기존 암호통신과 양자 암호통신 비교

양자 암호 키 분배 프로토콜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84년에 공개된 BB84입니다. 이 프로토콜에서는 편광을 이용하여 암호키를 공유합니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며 진행합니다. 이때 전기장은 빛의 진행방향과 수직인 모든 방향으로 진동합니다. 그런데 빛을 편광필터, 즉 편광판에 통과시키면 일정 방향으로 진동하는 편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림 5. 편광필터

위 그림에서는 전기장이 여러 방향으로 진동하며 진행하던 빛이, 편광판을 지나면서 전기장이 위 아래로 진동하는 편광이 되었습니다. 수신부에서는 광자를 편광 필터에 통과시켜 전송하고, 송신부에서는 이런 편광된 광자를 받아 다시 필터를 통해 원래의 정보를 얻어냅니다. 이 과정을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이 프로토콜에서는 ✚ 편광 필터와 ✖ 편광 필터 두 종류를 사용합니다. ✚ 편광 필터에 광자를 통과시키면 수직편광(↕) 혹은 수평 편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 편광 필터에 광자를 통과시킬 때에는 대각 편광(↗↙)과 역대각 편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직 편광과 대각 편광을 0에, 수평 편광과 역대각 편광을 1에 대응시킵니다.

송신부에서 ‘011010’이라는 정보를 송신하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0을 보내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 편광 필터를 사용해서 대각 편광을 만들어 보낼 수도 있고, ✚ 편광 필터를 사용해서 수직 편광을 만들어 보낼 수도 있습니다. 둘 중에 수신자가 임의로 선택해서 보내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각 0과 1마다 원하는 필터를 선택해서 편광을 만들어 전송합니다. 송신부에서는 송신한 편광 신호를 바탕으로 해당 신호가 0과 1중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수평 편광을 수신한 경우에 ✚ 편광 필터에 통과시키면 수평 편광을 측정할 수 있지만, ✖ 편광 필터에 통과시키면 대각 편광과 역대각 편광을 측정할 확률이 1/2로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수신부에서 두 필터 중에 임의로 선택해서 신호를 측정한 후, 추가로 송수신 부에서 같은 종류의 필터를 사용했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필터를 사용한 비트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는 암호키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1,5,6번째 비트를 복호화하는 과정에서 같은 필터를 사용했다면 양측에서 공유하는 암호키는 010가 됩니다.

그림 6. 암호키 분배 과정 예시

중간에 도청을 한다면 가로챈 광자와 같은 광자를 수신부에 보내야만 도청 사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광자의 특성상 원래의 광자와 같은 광자를 생성하여 보내기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도청이 일어났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청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면 도청된 암호키를 폐기하고 새로운 암호키를 분배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양자 컴퓨터와 양자 보안 기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기존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반 직관적인 현상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양자 기술은 앞으로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그림출처
그림 1. http://www.kbiz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974
그림 2. https://terms.tta.or.kr/dictionary/dictionaryView.do?subject=큐비트
그림 4. https://pioharu.tistory.com/56
그림 5. https://news.samsungdisplay.com/25210/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