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거 어디서 났어
돈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 물질이 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목에도, 그리스 황제의 머리에도, 셀럽의 손가락에도 있었던 이 물질은 바로 이번 기사의 주제인 '보석'입니다. 반짝이며 단단한 보석은 지구에 많지 않습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며 천천히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점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보석은 예쁘지만, 그 수가 적기에 소유자에게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죠. 덕분에 보석은 역사적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보석이 희귀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젠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만든 사람이 지구가 아닌 연구자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보석의 희귀성이 위협받는 상황은 곧 보석의 가치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보석이 어디서 났는지'가 중요해졌죠. 공학자들은 다이아에 정보를 새기는 기술부터, 최근 유행하는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기까지 보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큰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보석의 출처에 관한 공학적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연구실로 함께 가시죠.
1. 인공(Lab grown) 다이아몬드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다이아몬드는 크게 고온고압법(HPHT)과 화학 기상 증착법(CVD)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고온고압법(HPHT)은 자연에서 다이아몬드가 형성되는 방식과 유사하게 고온과 고압을 사용해 탄소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말하자면 작은 다이아몬드를 그래파이트1), 금속 촉매와 함께 초고압, 초고온에 넣어 다이아몬드를 점차 키우는 방식입니다.
자세한 과정은 아래의 그림과 같은데요, 먼저 작은 다이아몬드와 그래파이트를 위 그림과 같이 금속 촉매와 함께 합쳐서 성장 체임버에 넣는 과정으로 시작합니다. 다음으로 압력은 대기압의 약 6만 배인 6GPa, 온도는 철이 녹는 점과 비슷한 1,500℃ 정도로 가열합니다. 그러면 금속 촉매가 융해되며, 그래파이트의 탄소를 다이아몬드로 전달해 새로운 다이아몬드 구조가 형성되죠. 이 과정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일까지 지속되는데요. 만약 1캐럿을 만들려고 한다면 1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후 불순물을 제거해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HPHT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들은 제작 과정에 드는 시간이 적고 CVD에 비해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산업용 공구에 많이 사용됩니다.
다음으로 CVD는 탄소 원자 가스가 보석 씨앗 층에 증착되어2) 다이아몬드가 성장하는 방식입니다. HPHT보다 비교적 저압, 저온에서 깨끗한 다이아몬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생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평평한 기판에 판 형상의 다이아몬드 결정을 놓습니다. 이후 CVD 반응 체임버에 넣고, 진공 상태를 만든 다음 순수한 메탄 가스(1%)와 수소 가스(99%)를 챔버에 채웁니다. 이후 체임버에서 강한 전압을 가해 플라즈마3)를 만들면 메탄 가스가 탄소 원자와 수소 원자로 분해됩니다. 그중에서 탄소 원자만이 다이아몬드 씨앗 위에 증착되어 다이아몬드가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다이아몬드가 자라는 속도는 하루에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1캐럿의 다이아를 만들기 위해선 약 3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비록 자연 다이아몬드와 인공 다이아몬드의 성분과 구조는 동일하지만, 보석의 가치는 '희귀함'에서 온다는 관점에서 두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같지 않습니다. 24년 하반기 기준으로 자연 다이아몬드는 실험실 다이아몬드에 비해 약 4배 비싸죠. 즉, 다이아몬드가 땅에서 왔는지, 실험실에서 왔는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왔습니다.
2. 분쟁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정확히 표기하면 또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데요, 바로 불법적인 자금에 다이아몬드가 활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내전 지역에서 채굴되고, 반군이나 무장 세력의 불법 자금으로 사용되는 다이아몬드를 일컫는 '분쟁 다이아몬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이아몬드는 금보다도 밀도 대비 가치가 높고, 내구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출처를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불법적인 활동의 자금으로써 많이 활용되죠. 국제 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UN에서 다이아몬드 인증 시스템인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y Process Certification Scheme, KPCS)'라는 제도를 2003년에 도입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i) 나라마다, 보석 유통사마다 보석을 관리하는 기준이 다 달랐고, 무엇보다도 보석에 출처를 표기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었죠.
3. 다이아몬드에 이름표 달기
앞서 언급한 문제를 배경으로 공학자들은 천연 다이아몬드와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구별하고,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명확히 해야 하는 과제를 직면했습니다.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알아보기 전에, 이와 비슷한 문제인 '사람 구별하기'를 어떻게 해결했었는지를 살펴보죠.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외형적 특징이나 인적 사항으로도 구별할 수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이름을 확인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착안해 공학자들은 다이아몬드에 이름표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보석에게 출처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죠!
따라서 문제 해결은 이제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다이아몬드에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이고, 둘째는 다이아몬드의 이름을 기록한 이름 장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해결책과 관련된 기술로는 레이저 각인 방법이 있고, 두 번째와 관련한 기술로는 불순물 검사 기법, 디지털 프로필 기술이 있습니다.
먼저 다이아몬드에 이름표를 달 수 있을까요? 애초에 빛나는 장신구로 사용되는 보석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이 괜찮을까요? 공학자들은 이름표를 아주 작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레이저 각인 방법은 위의 그림과 같이 고정밀 레이저 장비로 다이아의 옆면에 약 0.1㎜ 크기로 출처 정보를 각인합니다. 이를 통해 품질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다이아의 출처를 표기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방식 또한 의도적인 손상에 의해 각인이 손상되면 더 이상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진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즉, 이름표를 다이아몬드 내부에 숨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단단한 다이아몬드 내부에 이름표를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요? '투명 레이저 각인'과 '나노 태그' 기술은 이 과제를 레이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투명 레이저 각인은 특정 파장의 레이저로 다이아몬드 내부에 작은 정보를 각인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마치 콩팥의 결석을 고에너지 충격파를 이용해 부수는 것과 비슷하죠. 나노 태그 기술은 이와 비슷하게 표면에 고유의 매우 작은 크기의 나노입자 혹은 나노 패턴을 새깁니다.
다음으로 다이아몬드의 이름을 저장하는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선 먼저 다이아몬드가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지, 즉 다이아몬드는 제각각 다른 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우리는 얼핏 모든 다이아몬드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투명하고, 단단하고, 화학식도 C로 매우 단순하죠. 하지만 몇 가지 구분 점이 존재하는데요, 먼저 천연 다이아몬드와 인공 다이아몬드의 경우에는 생성 소요 시간에 기인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자연 다이아몬드는 미량의 질소를 포함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되는 인공 다이아몬드에는 질소와 같은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음식을 너무 빨리 만들어 먼지가 들어갈 시간조차 없는 것입니다. 질소 원자가 탄소 원자의 결합으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내부에 들어가면, 특정한 구조적 결함(point defect)을 일으키죠. 그것이 다이아몬드의 색상을 바꾸거나 미세한 패턴을 형성합니다. 불순물 검사 기법은 적외선 분광기나, 고배율 현미경을 이용해 구조적 결함에 의한 작은 점 형태의 불순물이나 특정한 패턴을 확인해 그들을 구분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자연 다이아몬드는 제각각 다른 미세 구조와 모양을 가집니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연마할 때 원석 형태에 맞춰서, 최대한의 무게를 보존하면서도 이상적인 컷팅이 필요하기에 각기 다른 연마 방법이 사용됩니다. 즉, 모든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지문처럼 고유의 질량과 컷팅, 나노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프로필 기술은 이러한 다이아몬드의 무게, 컷팅, 색상, 결함 형태, 채굴 위치 등의 여러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기록하여 개별 다이아몬드를 고유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각인 기술과 연계되어 더 큰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죠.
다이아몬드에 이름표도 달고, 이름 장부도 만들었다면, 이제 장부 자체를 안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아주 제격인 기술이 있는데요, 바로 블록체인4) 기술입니다.
4. 블록체인 기반 다이아몬드 유통망
기존의 보석 유통 과정에서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대한 정보는 채굴과 연마, 유통에 대한 정보를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요. 첫째로 개별 회사가 관리한다는 점에서 신뢰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중앙화된5) 방식에서는 투명성이 부족하고, 공급망의 각 절차에서 정보를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각 기관은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중간 절차가 많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정보가 누락되거나 위조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둘째로 중앙화된 다이아몬드 거래 시스템은 여러 중개자가 참여하기에 검증과 인증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추가됩니다. 마치 농작물의 중간 유통업자 수가 늘수록 소비자 가격이 증가하는 것과 비슷하죠.
정리하자면 중앙화된 거래 시스템은 여러 기관이 분산된 형태로 인증을 관리하기 때문에 투명성이 부족하며, 중개자들을 거치면서 비용이 증가하죠. 즉, 중간 단계가 많으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증가합니다. 이런 문제 상황은 이는 블록체인 기술의 탄생 배경과 유사한데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유통 관리 기술은 앞서 말한 2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선 블록체인 같은 탈중앙화된 기록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다이아몬드의 채굴부터 유통 과정의 모든 경로가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 수정 불가능하게 기록됩니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므로 누구나 이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출처 위조와 불법 거래를 방지할 수 있죠. 게다가 모든 정보에 판매자와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거래 과정도 간소화하여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보석은 인류 곁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음에도 아직 그것이 지닌 공학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기술과 유통 및 정보 기술이 각각의 영역에서 발전하면서 보석 산업의 크기를 키우고 있죠. 인공 다이아몬드는 자연 다이아몬드에 준하는, 혹은 그보다 뛰어난 품질을 실험실에서 구현하고 있고, 레이저 각인 기술과 정보의 디지털 암호화 기술은 다이아몬드의 출처와 유통 경로를 투명하게 기록해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다이아몬드를 볼 때 외면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공학적인 가능성도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
1) 그래파이트: 탄소 원자가 육각형 평면 구조로 배열되어 층을 이루는 결정질 탄소의 한 형태
2) 증착하다: 얇은 막을 형성하기 위해 기체 상태의 물질을 고체 표면에 얇게 쌓다.
3) 플라즈마: 기체가 높은 에너지를 받아 이온화되어 전자와 이온이 혼합된 상태를 이루는 물질의 네 번째 상태
4) 블록체인: 데이터를 블록 단위로 저장하고 이를 암호화하여 연결한 후, 분산된 네트워크에서 참여자들이 이를 공유하고 검증해 데이터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기술
5) 중앙화: 모든 관리가 한 곳에서 이루어져 중요 권한이 특정 기관에 집중된 상태
참고 문헌 및 출처
i) kimberleyprocess. https://www.kimberleyprocess.com. Accessed November 3, 2024.
ii) 진종문. Skhynicsnewroom. 2019-04-10. https://news.skhynix.co.kr/post/chemical-film-growth. Accessed November 3, 2024.
iii) WC Editorial Team. Withclarity. May 26, 2023. https://www.withclarity.com/blogs/diamond/what-is-the-hpht-process-to-grow-lab-diamonds.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 출처
그림1: pixabay.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ai-생성-약혼-반지-보석류-9001189/
그림2: https://www.youtube.com/watch?v=MmbvgMGRD4U.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3: https://hkdlabs.ca/high-pressure-high-temperature-diamonds-hpht/.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4: https://nationaljeweler.com/articles/912-growing-a-diamond-using-cvd-video.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5: https://www.aemdeposition.com/blog/principle-of-chemical-vapor-deposition.html.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6: https://www.iied.org/sustainable-development-artisanal-mining-time-broaden-blood-diamonds-conversation.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7: OpenAI. Image generated by DALL-E, version 3.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8: https://www.serendipitydiamonds.com/blog/how-to-read-the-gia-laser-inscription-on-your-diamond/. Accessed November 3, 2024.
그림9: https://startupsmagazine.co.uk/article-diamonds-blockchain-dlt-widens-diamond-market. Accessed November 3,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