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야구와 만나다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은 어떤 스포츠를 즐기시나요? 텔레비전 속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멋진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습니다. 달리기처럼 운동복과 운동화 정도만 갖추면 되는 스포츠가 있는가 하면, 스키나 스노보드처럼 먼 길을 찾아가야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도 있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소수의 부유한 사람만 즐길 수 있었던 유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고, 스포츠도 예외는 아닙니다. 컴퓨팅 파워가 성장하고 네트워크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온라인 기반 e스포츠가 성장해 왔으며, 디스플레이와 센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시뮬레이션 스포츠 산업도 성장했습니다. 실외 활동이 어려웠던 코로나19를 거치며 시뮬레이션 스포츠에 대한 어색함과 반감도 줄어들어, 스크린 골프, 스크린 야구, 스크린 낚시, 스크린 사격 등 다양한 스포츠를 스크린으로 가져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대상상 부원들이 학교에 갈 때 자주 이용하는 서울대입구역에도 스크린 야구장이 있어서, 타격 연습을 하러 줄을 선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시뮬레이션 스포츠, 특히 스크린 야구 뒤에 숨은 공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도록 - 비전 센서
스크린 야구의 기본적 원리는 간단합니다. 이용자가 배트로 공을 받아치는 짧은 시간 동안 배트와 공, 몸의 움직임, 정확히는 각 구성 요소들의 위치와 운동 속도를 분석하여 실제 경기장이라면 공이 어떤 식으로 날아갈지 예측하는 것이죠. 그러나 배트와 공이 맞닿는 짧은 순간에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하고, 프레임마다 찍힌 대상의 위치를 연속적인 속도로 바꿔야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장비가 비전센서입니다.
비전센서는 대상을 측정하고 이미지로부터 정보를 얻는 데 사용하는 카메라입니다. 포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오로지 스크린 스포츠만을 위해 개발된 기술은 아닙니다. 비전센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에는 빛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발명이 있고, 그 이후는 사람이 할 수는 있지만 번거로운 반복 작업을 줄이기 위해 카메라를 통해 기계가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병뚜껑 중앙에 라벨이 제대로 프린트되었는지 확인하거나, 물품에 제조일자가 올바르게 인쇄되었는지 인식하는 등 간단한 작업들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비전센서에 어떤 상이 맺힐지는 카메라가 어떤 파장의 빛을 감지하는지, 조리개로 얼마나 많은 빛을 받아들이는지, 렌즈의 초점 거리는 얼마인지 등 모든 부품이 영향을 끼칩니다. 스크린 야구의 경우 이용자가 내부에 있기 때문에 특정 종류의 조명 하에 촬영해야 한다는 점, 배트와 공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초당 촬영하는 사진의 수가 충분히 많아야 한다는 점 등이 주요 제약이겠죠. 각 구성요소의 특성을 잘 조정한 비전센서는 제조업, 식품 가공, 전자제품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대상상 35호 "자동차 속 자율화 장치: 자동차의 눈이 되어 주는 비전 센서"에서도 자율주행 자동차에 사용하기 위한 비전센서에 대해 파헤친 적이 있었습니다.
주어진 데이터를 100% 활용하려면? - 외삽의 기술
정밀하게 공과 배트를 감지하는 것이 좋은 스크린 야구의 전부는 아닙니다. 스크린 야구장에서 공이 운동하는 범위에 비해 비전 센서가 촬영할 수 있는 구간은 한정적입니다. 실제 야구장의 환경과 비교해 보면, 스크린 야구장 내부에서 공의 운동은 수백 미터의 이동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죠.
비용의 문제도 있습니다. 타구의 순간을 더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장비의 성능을 올리다 보면 실제로 이용자에게 줄 수 있는 효용보다 비용이 더 빨리 증가하는 순간에 도달합니다. 비용에 제약을 두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최대 효용의 한계를 파악하고 늘리는 것과, 비용과 효용 간 관계를 잘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여러 제약 하에서 최대 효용을 내는 것 중 전자를 과학의 일, 후자를 공학의 일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크린 스포츠의 경우, 장비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잘 설계된 소프트웨어로 처리하여 이 타협점을 찾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과학 과목을 공부하며 이런 문제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공을 5㎧의 속력으로 45도 각도로 쏘아 올렸을 때, 1.5초 이후 공의 좌표를 구하라." 현재 가진 정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이 매우 궁금해하는 문제이고, 과거 야생에서의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기도 했습니다. 정량적 측정과 계산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과 공학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예측을 내놓기 위해 이미 아는 정보로부터 통계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미래, 혹은 관찰 범위 밖의 정보를 도출하는데요, 이러한 방법론 전반을 외삽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측정값이 나온 범위 내의 정보를 좀더 촘촘하게 추측해 나가는 것은 내삽이라고 하죠.
관찰 범위인 '비전센서 시야 내의 촬영 결과'로부터 원하는 정보인 '실제 야구장이라면 공이 날아갔을 궤적'을 구하려면 공에 작용하는 중력, 공기저항, 회전으로 인한 주변 기류 변화 등 물리법칙을 수학적 도구로 사용하여, 다음 순간 공의 위치를 차례차례 계산하는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작은 시간 간격마다 물리 법칙에 의한 외삽을 적용해, 전체 오차를 최소화하는 것이죠.
이렇게 주어진 데이터에서 최선을 다해도, 현실의 야구장은 바람 등 수많은 변인이 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으로는 한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실제 야구 경기들에서 타자의 타구 동작, 대기 상태 등 변인과 그에 따라 바뀌는 결과인 공의 궤적 정보를 측정하여, 미리 머신러닝 등으로 전처리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들르는 스크린 야구.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산업의 수요로 발전한 비전센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한 외삽법과 시뮬레이션처럼, 여러 공학적 요소들을 스포츠에 접목하여 만들어진 복잡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스크린 스포츠가 도입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스크린 스포츠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공학은 스포츠라는 일상적 취미 활동에도 접목될 수 있습니다. 2023년만 해도 스크린 스포츠 관련 국내 특허가 1900건을 넘었다고 하니, 거대한 산업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죠. 취미로서 좋아하는 일과 관심 있는 공학 분야들을 열린 생각의 틀에서 보고, 여러 학문의 교차점을 잘 관찰한다면 더 흥미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도 취미생활 속에서 언젠가 배웠던 과학을 찾아보는 시도들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Diez, D. M. Barr, C. D. and C, etinkaya-Rundel, M. (2019). OpenIntro Statistics, 4th edition, OpenIntro, Inc
Vision system(cylod), 머신비전의 기본 원리 따라잡기 (https://visionsystem.kr/issue-news?tpf=board/view&board_code=2&code=984)
Golf Journal, 스크린 스포츠 기술 한국 1위, 선두는 스크린골프 (https://www.golf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23)
그림 출처
그림1: Microsoft Copilot AI로 생성한 이미지
그림2~그림4: https://visionsystem.kr/issue-news?tpf=board/view&board_code=2&code=984
그림5: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C%99%B8%EB%B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