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 하이재킹 -
서부개척시대 강도가 열차를 납치하기 위해 열차 위에 올라타 기관사에게 총을 겨누며 했던 말입니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이재킹(HiJacking)'이라는 단어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강도들이 밀매품들을 실은 차나 배를 강탈하는 행위에 한정하여 '하이재킹'이라 칭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확대되었습니다. 항공기 납치, 사이버 상의 시스템 해킹, 심지어 스포츠에서는 특정 구단으로의 이적이 거의 확실시된 선수를 다른 구단이 가로채 가는 상황에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곤 합니다.
올해 대한민국에서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 포스터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항공기 납치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위기들과 인물들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를 본다면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가장 일촉즉발의 순간은 납치된 여객기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 그리고 여객기가 배면비행1)을 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들은 의문이 들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구멍이 뚫린 여객기가 공중에서 긴 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지, 전투기도 아닌 여객기가 배면비행이 가능한지와 같은 의문들 말입니다. 이 상황들 속에 어떤 물리 법칙이 숨어있는지 알아보고, 그 법칙들을 고려하여 영화 장면들에 대한 의문을 저와 함께 해결해 봅시다!
여객기에 구멍이 뚫렸다?
기압이란 대기의 압력을 뜻합니다. 압력은 단위 면적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의 크기를 의미하므로 다시 말해서 기압은 단위 면적에 공기 분자가 끊임없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수직 성분의 힘의 크기라고 볼 수 있죠. 표준적으로 지구 해수면 근처의 기압을 1기압이라 정의했습니다. 지면에 가까울수록 중력에 의해 공기 분자가 더 많이 존재하는데요, 이 때문에 기압은 커지게 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면에 멀어질수록 공기 분자는 적게 존재하고, 기압은 작아질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객기를 타고 산소가 부족한 하늘에서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쉬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걸까요? 바로 여객기 내 기압을 조절해주는 여압 시스템 덕분입니다. 여객기가 해발 고도 1만 미터에서 날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 높이에서의 기압은 0.26정도입니다. 지구 해수면 근처의 기압과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기압이며 공기는 매우 희박합니다. 아무런 장치가 없는 여객기에선 사람이 살아있을 수 없습니다. 이때 여압 시스템이 비행기 내부에 강제로 압력을 가하여 외부보다 압력을 높게, 그리고 지상의 기압과 비슷하도록 만들어줍니다. 1만 미터 높이에서는 보통 외부 기압보다 0.63기압 정도 높여서 0.89기압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는 약 1천 미터 높이에서의 기압이며 인체에는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 <하이재킹>에서는 폭탄 폭발로 인해 여객기 바닥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립니다. 그여객기가 해발고도 1만 미터로 비행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공기는 고기압인 외부에서 저기압인 내부로의 방향으로 흐름이 형성되므로 긴 시간이 흐르면 내부의 산소는 빠져나갈 것이고 기내 기압은 외부 기압에 점점 가까워 지겠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미 산소 공급 부족으로 의식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다행이도 영화 내에선 저공 비행을 하고 있던 중 구멍이 뚫린 것이고 큰 구멍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승객이 그 구멍을 여러 물체를 쌓아 막는 것으로 대처합니다. 내부에서 외부로 산소가 빠져나가는 과정을 저지한 것이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객기가 뒤집힌다고?
영화 <하이재킹>에서 납치범은 조종사를 협박하여 여객기를 북쪽으로 운전하게 합니다. 여객기가 38선을 넘기 직전 절체절명의 순간 조종사는 엔진을 풀가동하여 여객기를 수직으로 만들고 이후 배면비행으로 전환하여 위기를 극적으로 탈출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전투기도 아닌 평범한 여객기가 배면비행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지 모릅니다.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주로 타는 여객기는 수평 비행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객기의 날개가 위는 둥글고 아래는 평평한 것도 수평 비행의 전제 하에 양력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위로 떠오르게 해주는 힘인 양력에 대해선 공대상상 46호 '영화 <그란 투리스모> 게이머에서 실제 레이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기사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면, 여객기가 전진하면 주변 공기들이 날개를 스쳐지나가는데, 이때 에어포일2)의 윗면에서 공기의 속력이 아랫면에서의 공기 속력보다 빨라지고 베르누이의 원리3)에 의해 날개 위쪽의 기압이 아래쪽보다 낮게 형성됩니다. 결국 기압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하고 이때 위쪽으로 발생한 힘인 양력에 의해 여객기가 비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심화해 보도록 합시다. 배면 비행, 즉 여객기가 뒤집혀서 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다룬 양력의 원리에 의하면 배면 비행 시에는 평상시와는 반대로 날개 위쪽의 기압이 아래쪽보다 높게 형성됩니다.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 양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행기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실 받음각에 대해서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받음각이란 날개를 향해 오는 공기의 운동 방향과 날개의 시위선4)이 이루는 각을 말하는데, 이때 받음각으로 인해 공기는 방향이 아래쪽으로 변하게 됩니다. 공기가 아래쪽 뱡향으로 가속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행기의 날개는 위쪽으로 받는 힘인 양력이 발생합니다. 양력의 요인이 한 가지 더 있었던 것이죠!
다시 돌아가 여객기가 뒤집혀서 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여객기가 뒤집혔을 때 날개의 위 아래가 바뀐 이상 비행 중 날개의 모양을 바꿔서 기압차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할겁니다. 그렇다면 받음각을 형성하여 공기의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위로 큰 양력을 만들 수 있다면 배면비행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여객기가 뒤집히면서 기압차에 의해 아래로 받는 양력보다 더 큰 양력을 만들 수 있는 받음각을 찾는다면 위로 양력이 형성되어 배면비행을 할 수 있겠죠. <하이재킹>에서 등장한 몇 초 정도 안정적으로 배면비행하는 장면은 위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현실적인 장면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여객기가 뒤집혔을 때 기압차에 의해 아래 방향으로 작용하는 양력을 극복하는 받음각을 공학적으로 정확히 계산한다면 여객기가 긴 시간 배면비행을 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여객기는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기 때문에 배면비행의 지속시간이 짧더라도 승객들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여객기는 연료통 구조상 연료통이 뒤집히면 원활한 연료 공급이 힘듭니다. 그래서 배면비행이 필요한 전투기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연료 펌프나, 뒤집혀도 연료가 원위치에 있도록 돕는 격벽이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일반 여객기의 수평 비행을 전제한 설계로 인해 배면비행에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하고, 완벽한 받음각 계산에 기반한 여객기가 나타난다면 어쩌면 미래에는 여객기가 위기의 순간에 자유자재로 배면비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다룬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기사에선 영화와 관련된 공학적 지식들을 다루어 보았으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우리나라 역사적 사건에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등장인물에게 공감하고, 시대에 대해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건 어떨까요? <하이재킹>뿐 아니라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합니다. 과거를 탐험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며, 공학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여러 방면에서 바라보며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공대상상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
1) 비행기가 뒤집힌 자세로 비행하는 것
2) 날개를 수직으로 자른 단면
3) 유체가 규칙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속력, 압력, 높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 이 원리에 따르면 속력이 클수록 압력은 작아진다.
4) 에어포일의 둥근 앞부분에서 뒤 끝부분을 연결한 선
참고 문헌
이치원, "비행기 내부의 기압은 어떤 상태로 유지되나", e-금강뉴스, 2008년 12월 8일 https://www.k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20
서울대학교 과학연구소 탐구수업 지도자료 https://serc.snu.ac.kr/wp-content/uploads/sites/80/2022/a/19_1_4_2_%EA%B8%B0%EC%95%95%EA%B3%BC%EB%B0%94%EB%9E%8C_%EB%8F%84%EC%9E%85.pdf
이민환, "지금까지 모두 틀렸다. 새로 밝혀진 비행기 양력 이론" 이코노사이언스, 2023년 05월 20일. http://www.astronomer.rocks/news/articleView.html?idxno=90603
그림 출처
그림1: CGV - <하이재킹> 영화 정보(https://moviestory.cgv.co.kr/fanpage/stillCutViewer?movieIdx=88271&iCnt=76)
그림2: 송현서. (2022년 7월 5일). [포착] '옆구리' 구멍난 채로 14시간 날아간 비행기 , now news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705601008)
그림3: 공대상상 46호 기사, (2024년 3월) '영화 <그란 투리스모> 게이머에서 실제 레이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재인용 (https://snu-eng.kr/html/2403/SS46_52_culture.php)
그림4: 제 6판 항공우주학개론 교과서
그림5: 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Fluids/airfoi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