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공대생

인간과 기술의 조화
-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

글. 에너지자원공학과 1 박수아 편집. 전기정보공학부 3 김채원
그림1 천 개의 파랑 표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사회. 눈 깜빡할 사이에 발전되어 있는 인공 지능을 보면서 요즘 따라 더욱 실감이 되는 말입니다.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은 혹시 이런 빠른 발전 속도가 무섭다고 생각해 보시지 않았나요. 또는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이 지배된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은 있으신가요. 그런 분들에게 오늘 소개할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 깊숙이 들어온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SF 소설입니다.

"천 개의 파랑" 속 미래에는, 사람들 곁에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로봇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경주용부터 가사도우미 로봇까지 그 용도가 다양합니다. 이 인공지능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고, 그 역할을 모두 다하고 나면 폐기될 운명입니다.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미래 사회의 모습이죠. 인간들은 뭐든 빠르고 정확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이에 맞지 않는 인간들은 어느샌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은 본래는 인간을 위해 발전해왔지만, 이 책의 미래에서는 기술이 도리어 인간들이 그들의 역할을 빼앗겨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인공 지능의 발전이 우리 인간 사회에 주는 이로움만큼 부작용들도 생겨나고 있죠. "천 개의 파랑"은 인공 지능, 더 나아가 과학 기술은 인간 사회와 어떻게 이로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소통 그리고 용기

이 책의 주인공인 연재, 은혜, 보경은 한 가족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의 흐름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인물들입니다. 연재는 경제 사정 때문에 로봇 공학자라는 꿈에 쉬이 다가가지 못하고, 은혜는 신체 장애로 인해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받고 있으며, 보경은 배우자를 잃은 후 상실감에 묻혀 의욕 없는 하루하루들을 보냅니다. 이들은 가족이지만, 각자의 상처 때문에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이런 시간들이 길어져 마음의 거리는 멀어질대로 멀어진 상태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기계 다리는 이미 개발되었지만, 높은 가격 탓에 은혜는 기계 다리를 부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등, 이 가족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후 지쳐 있습니다.

그림2 경마 경주하는 로봇 기수

"천 개의 파랑" 속 미래는 현재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해 있고, 현재 인간이 맡고 있는 많은 역할들은 상당수 로봇들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재 가족의 삶은 기술의 수혜를 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은 직접 청소를 하고, 다리가 아픈 은혜를 직접 학교에 데려다 주는 등 2024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죠. 그러나 한 편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일하지 않고, 남는 시간에는 로봇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마 경기 등의 유흥을 즐기고 있습니다. 기술이 수준 높게 발전한 사회는 인간들에게 일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하여 인간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만 같지만, 실상은 여유로운 사람들에게만 그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등장인물, 콜리는 부상 위험이 높은 경마 경기의 기수를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콜리는 원래 경마 경기의 에이스 로봇이었지만, 경기 중 사고로 인한 파손 때문에 그 가치를 없고 폐기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로봇 공학자가 꿈이던 연재에 의해 운 좋게도 콜리는 폐기 직전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연재 가족들과 함께 연재의 집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처음에 연재의 가족들은 로봇뿐인 콜리가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점차 콜리와 소통하며 변화하게 되는데요.

콜리는 경주를 위해 설계된 로봇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경마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들만 가진 로봇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단어의 정의부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죠. 호기심 많은 로봇 콜리는 적극적으로 인간들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는 연재와 은혜에게 "그리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감정의 의미를 묻곤 합니다. 이는 단순하게 그리움의 정의를 모르는 콜리가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리움에 묻혀 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보경에게는 콜리의 이런 말들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 가족들은 결국 콜리 덕분에 본인들의 아픔을 인지하고 되돌아보면서 가지고 있던 삶의 태도를 바꾸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인공지능에게 받는 위로

그림3 집에서 대화하는 로봇

우리는 감정적 교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인간만의 소유물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보경도 처음에는 콜리에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콜리가 보경과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콜리의 계속된 시도 끝에 보경은 콜리가 하는 말에 점차 대답을 해 주고, 비로소 자신은 스스로가 만든 세계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경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을 꺼내는 걸 도와줄 상대였던 거죠. 단순히 단어의 뜻만을 이해하고 있는 콜리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 보경에게는 콜리의 질문들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는 큰 계기가 되었던 겁니다. 이처럼, "천 개의 파랑" 속 보경과 콜리의 관계를 관찰하다 보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버금가는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여집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 다르듯이, 누군가에게는 콜리처럼 자신의 마음을 물어봐주고 또 묵묵히 들어줄 상태가 필요할 것이죠. 이 이야기를 통해 인공지능이 단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인간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단절된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하는데 활용될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인공지능 챗봇이 인간에게 실질적인 심리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진행되었습니다.1) 챗봇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챗봇을 이용하고, 그 이용 경험에 상당히 만족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람'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겁니다. 심리학 논문을 살펴보면, 위로를 얻는 행위는 위로해주는 사람의 진심보다는 위로의 형식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2) 즉, 인공지능이 설령 감정의 본질을 느끼지 않더라도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등의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듯, "천 개의 파랑"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새로운 관계 형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 보아야 할 고민

"천 개의 파랑" 속 연재의 가족은 콜리를 통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 새로운 관계의 형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재 가족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사회가 취한 태도는 최선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유흥을 위해 경마 기수용 로봇을 개발하면서, 로봇들에게 본인들의 자리를 뺏기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할 기회는 없던 연재네 가족을 외면하는 사회의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면은, 우리가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해보아야 할 부분인만큼, 미래의 공학도를 꿈꾸는 여러분들은 인간과 기술이 적절히 조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 1) 임소혜, AI 챗봇 타입과 이용동기에 따른 사용만족도 및 지속사용의도: 자기결정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20.

  • 2) 김유리, 정남운, 분리-개별화와 자기위로능력간의 관계: 자기개념명확성의 매개효과, 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vol 19, 2019.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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