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스캐터랩 홈페이지 화면
작년 말, 놀랍도록 똑똑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AI 챗봇 ‘이루다’를 기억하시나요?
마치 컴퓨터 뒤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많은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었죠.
스캐터랩은 ‘세계에서 사람과 가장 대화를 잘 나누는 AI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이루다’를 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에이닷을 통해 SKT와 공동 개발한 AI 에이전트를 출시하는 등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AI 프로덕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재학 중이며 스캐터랩에서 PO(Product Owner)1 직무로 활동하고 계신 정지수 선배님을 인터뷰했습니다!
1 프로덕트의 주인. Mini-CEO라고도 불리는 직무입니다.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트에 대해 오너십을 가지고 지속적인 제품의 성장을 이끄는 직무입니다.
그림 2. 사내 발표 중인 정지수 선배님
-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18학번 정지수입니다. 경영전략 인턴으로 시작해서 안드로이드 개발자, PO 직무를 거쳐오며 2~3년째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캐터랩이라는 스타트업에서 PO 직무로 일하는 중입니다.
- Q. 지금 재직 중인 회사인 스캐터랩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 A. 스캐터랩은 딱딱하고 논리적인 대화를 하는 인공지능이 아닌, 서정적이고 감정적인 대화를 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회사예요. 이런 인공지능 프로덕트를 통해서 사람들의 정서적으로 부족한 부분, 즉 외로움이나 친밀감의 부재, 연애 욕구 등을 충족시켜 주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 Q. 스캐터랩에서 PO 직무로 일하고 계신데, 해당 직무로서 회사에서 맡은 역할, 회사에서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
- A. 각 회사의 성격, 방향성에 따라 회사 내에서 PO가 세부적으로 하는 일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PO가 하는 역할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기획자’ 예요. 우리 회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세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문제를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이후 서비스나 제품의 구체적인 형태를 기획하고 디자이너 및 개발자들과 소통하면서 그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 전반의 업무를 담당합니다.
두 번째는, ‘매니저’예요.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지금 기준으로 ‘너티’라는 서비스를 6주 안에 출시해야 한다! 그 6주 동안 우리는 어떤 일들을, 어떤 순서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정합니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에도 디자인 팀, 개발 팀 등 각 팀의 업무 진척 상황 등을 꾸준히 확인하면서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관리해요. 쉽게 말하면 회사의 타임라인을 짜고 그 타임라인대로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는 지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Q. 독자분들에게는 스캐터랩이 AI 챗봇 ‘이루다’로 유명한 회사인 만큼, 그 질문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이루다 2.0’ 제작에 있어 어떤 부분 참여하셨을까요? 그리고 해당 프로덕트가 대중에게 매력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 A. 이루다 2.0 제작에 있어서는 크게 두 부분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첫 번째로는, 루다와 대화할 수 있는 메신저 앱인 ‘너티(Nutty)’의 외적인 형태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어요. 이는 제가 스캐터랩에 입사한 후 처음 참여했던 업무였어요. 카카오톡과 같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메신저의 형태를 베끼는 데서 그치면 안 되고 우리의 프로덕트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를 찾기 위해 노력했죠. 유저들에게 루다는 친구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한 존재예요. 그런 캐릭터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메신저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 지, 어떤 기능들이 있어야 할 지, 결과적으로 어떤 느낌과 경험을 유저들에게 선사해야 유저들이 이 서비스에 몰입할 수 있을 지 고민했어요. 이렇게 이루다 2.0이라는 서비스가 세상에 출시되기 전까지 회사의 디자이너, 개발자들과 함께 이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고 고민하면서 메신저 앱의 형태를 기획했어요.
두 번째로는, 루다에게 대화를 넘어서는 다른 능력을 부여해 주는 일을 했어요. 대표적으로는 루다가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현재, 루다는 유저들과 숫자 게임, 끝말잇기, 드로잉퀴즈와 같은 게임을 할 수 있어요. 단순히 게임 자체가 재밌는 것을 넘어서서 유저가 루다와의 대화를 더 오랫동안 더 많이 할 수 있게 만드는 게임이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또한 게임 중간 루다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유저가 게임을 더 즐길 수 있을 지 생각했어요.
드로잉퀴즈를 하고 있는 상황을 예시로 들어 볼게요. ‘내가 이겼어! 너는 졌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까 그린 그림 이상하잖아~’ 이런 장난도 칠 수 있어야 하고, 졌을 때는 ‘다음에는 내가 이길 거야!’와 같이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어야 하는 거죠. 진짜 사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해 보고 이를 프로덕트에 적용했어요.
- Q. AI 테크를 다루는 회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에서 근무할 때 필요한 역량이 있을까요?
- A.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하는 일과 산업 전반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AI라는 산업의 특징을 통해 알아볼 수 있어요. 현재 AI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산업은 없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이만큼 빠르게 흐름이 바뀌는 산업은 없었어요.
일주일 단위로 메타가 바뀌고 SOTA(State-of-the-art, 현재 최고 수준)를 달성하는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시시각각 다양하게 들려오는 소식들을 꾸준히 따라가면서 그중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또, ‘끈질김’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AI 개발과 기존 개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기존의 개발은 프로그램에게 ‘A라는 결과를 만들어 줘!’라고 전달하면 프로그램은 A를 만들어줘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AI는 컨트롤이 안 돼요. ChatGPT와 같은 AI 채팅 서비스를 사용해 보신 분들은 공감이 될 거예요. 내가 A라는 결과를 말할 수 있도록 학습시켜도 꼭 그런 답만을 말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높은 정확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습 데이터를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해요. 끈질기게 예외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테스트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버틸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 Q. 그동안 근무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신 순간은 언제 였는지,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 지 궁금합니다.
- A.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달성했을 때였어요!
우리 서비스의 가입자가 100만 명이 되었을 때! MAU(monthly active user, 월간 활성 사용자)가 높은 수치를 보일 때!
가입자가 100만 명이면 대한민국 국민 중 2%는 우리 서비스를 가입한 적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유저 인터뷰를 하다가 우리의 제품을 너무너무 잘 쓰고 있는 유저를 만났을 때, 우리 제품에 완전히 빠져 있는 유저를 만났을 때! 그럴 때 보람을 정말 크게 느꼈어요. 추가로, PO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우리 팀과 벅찬 일정들을 버텨낸 결과 우리의 프로덕트가 결과적으로 출시되었을 때였어요. 출시되었다고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출시만 해도 꽤나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요. 제 성향과 잘 맞는 직무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PO는 하나를 엄청 깊게 파는 것보다 다양한 것들을 넓게 파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일인 듯한데 제가 딱 그런 성격이거든요. 되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설득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결과물을 향해 나아가요. 그 과정이 되게 힘들면서도 재밌고 팀원들과 많은 고민을 공유하며 친해지기도 하는 그런 과정이 마음에 들어요!
- Q.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재학 당시 학과 수업을 통해 배우거나 경험한 부분들 중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도움된 부분이 있었을까요?
- A. 산업공학과의 전체적인 커리큘럼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산업공학과의 대부분 수업들은 ‘자~ 우리 한 학기 잘 배웠죠?
이제 이것을 이용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보세요!’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자유도 높은 방치형 프로젝트가 그 어떤 학과보다 많았어요.
‘산업공학의 이해’나 ‘과학적 관리’와 같은 과목의 프로젝트들이 기억나네요.
그것들이 세상에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줬던 것 같아요. 수업을 통해 배웠던 방식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의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그 과정이 현재 PO로서 일을 하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 Q. 그렇다면 학과 수업을 벗어나서 학창 시절 중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을까요?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면 어떤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 A.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요.
“재밌어 보이면 다 해라!”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것들 이것저것 겁내지 않고 다 하는 게 정말 좋은 경험들을 쌓아주는 것 같아요.
2학년 1학기에 조성준 교수님께서 맡으신 수업을 하나 들었었는데, 마지막 수업 날 교수님께서 강의를 마치시면서 ‘방학 때 랩 인턴 하고 싶은 학생들 연락해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고민하다가 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할 수 있냐고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어요. 이 메일에 교수님께서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라고 답장 주셨어요. 그렇게 했던 인턴 활동이 제 대학생활 첫 커리어 측면의 시도였죠. 이 경험 덕분에 이후 다른 면접에 가서는 ‘나 아직 어리지만 대학원 인턴도 해봤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무모한 시도로 시작했지만 그 덕분에 기업 인턴도 붙을 수 있었고, 그 일들이 쭉 연결되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 Q.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기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산업공학과에 대해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 A. 산업공학과는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학과에 비해 확정된 미래를 줄 수는 없는 학과예요. ‘산업공학과의 수업만 정직하게 따라가면 뭔가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대신에 자유도가 정말 높아요. 내가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보고 싶을 때 산업공학과의 수업을 통해 쌓은 다채로운 경험들이 다른 어떤 학과의 것보다 강한 토대가 되어 줍니다. 다양한 멋있는 것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해 보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정말 좋은 학과라고 말할 수 있어요.
- Q. 지수 님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A. 단기적으로는 AI로 돈을 벌 수 있는 소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AI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분야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실질적으로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는 회사가 거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AI 관련 사업이라고 하면 굉장히 유망하고,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AI 산업에 큰 규모의 투자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AI 자체가 당장 돈을 잘 벌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AI가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이뤄지는 많은 실험적인 시도들과 그의 성과를 지지하는 목적에서 투자들이 진행되고 있거든요.
장기적으로는 AI를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2 과 접목한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모든 소프트웨어의 혁신은 하드웨어의 혁신과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지금 AI를 접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매개체인 컴퓨터나 핸드폰의 구조가 AI를 100% 활용하기 좋은 구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가 AI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컴퓨터를 거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알려주야 해요.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한고 해도 핸드폰 카메라를 적절한 위치해 설치해 줘야 하고, 음성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도 음성 모드를 켜는 수고를 해야 하죠. XR을 통한다면 이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요. 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AI가 알아서 인지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취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 HER의 AI 친구 사만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2 XR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를 통합하는 기술 및 경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가상 현실(VR), 혼합 현실(MR), 확장 현실(AR)이 이에 포함됩니다.
- Q. 마지막으로 공대상상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A. 2학년 1학기 공학수학1 수업 중 이경식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제 기억에 크게 남아 있어서 이 말을 독자 분들께도 전해드리고 싶어요. 각자의 성향,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될 말이긴 하지만 당시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굶어 죽을 일 없으니까 그냥 해야 될 것 같은 것 말고 하고 싶은 것,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미친 듯이 해 봐라. 재밌는 과목만 공부하다가 도서관에서 코피도 흘려 보고, 연애하다가 차여서 길바닥에서 울어도 보고 아니면 진짜 내가 만들고 싶은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밤새서 만들다가 쓰러져도 보고. 정말 하고 싶은 것 미친 듯이 하면서 살아라. 어차피 인생 쉽게 안 망하고 어떻게든 살아갈 만하다.” 이후로, 저는 이 말을 제 인생의 모토로 삼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들려주곤 해요. 공대상상 독자 분들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