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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과연 좋았을까?
과학자가 짊어질 윤리적 책임에 관하여

글. 화학생물공학부2 채민규 편집. 화학생물공학부 2 이정환
그림 1.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안녕하세요 공대상상 독자 여러분. 오늘 ‘공대생의 눈으로 영화보기’ 코너에서 다룰 영화는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었던 ‘오펜하이머’입니다.

미래의 공학도를 꿈꾸고 있으실 독자 여러분들께서 꼭 이 영화를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대학원 시절부터 원자 폭탄 개발, 그리고 그 이후의 몰락하기까지의 심리가 직설적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원자 폭탄의 공학적인 논리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시대상을 기반으로 발생했던 정치학적 이념이나 윤리관의 충돌, 그리고 주인공인 오펜하이머가 처참하게 몰락하면서 나타나는 심리를 아주 직설적으로 풀어낸 점이 아주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1939년, 당시 독일의 과학자들은 중성자를 우라늄 핵에 충돌시키자 우라늄 핵이 깨어져 나오는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과학자들이 연쇄 반응으로 인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동시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미국의 과학자들과 독일의 과학자들이 자연스레 원자폭탄을 승리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연구에 돌입합니다. 미국에서 원자 폭탄을 제작하는 ‘맨허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오펜하이머입니다. 독일에서는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우란프로옉트’를 통해 원자 폭탄 개발을 시작하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원자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와 하이젠베르크의 도덕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리뷰해보려고 합니다.
그림 2. 핵분열의 원리
그림 3. 미국의 과학자,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뽑는다면, 저는 오펜하이머와 동료 과학자들이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역사상 첫 원자 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핵폭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말을 남기는데요. 세상이 원자 폭탄 발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을 확인한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파괴자라고 비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도 자신의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전쟁 무기를 만드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무기가 히틀러의 손에 먼저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과학자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자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할 때나, 유명 잡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영웅으로 취급하는 모습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막상 자신으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와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이후 나오는 여러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미국이 성공적인 실험을 끝낸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후 오펜하이머와 트루먼 대통령의 대화 장면입니다. 오펜하이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은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떨어뜨렸느냐요. 당신에게 신경이나 쓸 것 같소?”라며 오펜하이머가 투정을 부린다고 취급해버리죠. 오펜하이머가 원자 폭탄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함에 따라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잘 표현한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성당에서 승리 연설을 할 때에도 오펜하이머는 관중에게 “세상은 오늘을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거둔 이 성과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며 원자 폭탄 투하를 마치 전쟁을 끝낸 역사적인 순간으로 여기는 듯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후 오펜하이머는 관중의 형상이 마치 핵폭탄에 의해 증발되는 환영을 보게 됩니다. 이 장면 역시, 오펜하이머가 사람들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지만, 굉장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음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림 4. 오펜하이머의 실제 청문회 장면
이러한 오펜하이머의 혼란스러운 내면은 마치 연쇄 반응과 같이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원자 폭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는 과거의 죄책감 때문인지, 오히려 수소 폭탄은 개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요. 이로 인해 미국 정부로부터 배신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원자력 위원회의 의장이던 스트로스는 방사능 동위원소 수출 관련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오펜하이머에게 굴욕을 당한적이 있었는데요.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스트로스는, 이러한 미국의 의심을 기반으로 오펜하이머에게 복수를 하고자 청문회를 개최하였지만, 이는 사실 청문회를 가장한 누명 씌우기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여러 억울한 누명에도 적극적으로 맞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청문회가 결국 자신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업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5. 독일의 과학자, 하이젠베르크
영화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루어서 독일 과학자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요. 독일에서도 우란프로옉트라는 이름으로 매우 유명한 과학자들이 히틀러 아래에서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선봉대에 서있던 인물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하여 공로를 인정받고, 영화에서도 만남이 이루어지는 하이젠베르크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나치가 히틀러의 자살로 항복하고, 원자 폭탄 개발에 먼저 성공한 미국이 일본에 두 대의 원자 폭탄을 투하하여 마무리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과학자들은 ‘히틀러를 도와 원자 폭탄을 만들고자 하였다’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는데요. 하이젠베르크는 사실 자신이 몰래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을 방해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가 전쟁 중에 보어를 만난 사실과 비밀리에 과학자들의 대화1를 녹음을 들어본 결과 정치인들은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여러 노력을 통해 지연시키려 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1 실제로 하이젠베르크는 “나는 우리가 우라늄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가 폭탄을 만들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한 적 없네. 나는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는 사실이 심장 밑에서부터 기뻤을 뿐이야.”라는 말을 동료 과학자에게 얘기한 바 있다.

이렇게 미국과 독일에서의 원자 폭탄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두 과학자를 알아보았는데요. 오펜하이머는 성공적으로 원자 폭탄을 개발하여 전쟁을 끝낸 영웅이 되었지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발생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진 채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고, 그의 조국에게는 배신자라는 누명까지 받게 됩니다. 오히려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독일의 반역자로 몰릴 수도 있는,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비밀리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난 직후 사람들의 질타를 피하기는 쉽지 않았죠. 이처럼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윤리 이념과 당시의 시대상과의 갈등으로 인해 큰 시련을 겪는 경우가 허다했었습니다.
출처
그림출처
그림 1. 오펜하이머 공식 사이트 https://www.oppenheimer.co.kr
그림 2.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https://www.keia.or.kr/information/01.php?admin_mode=read&no=139
그림 3,4. The Manhattan Project https://wwiimanhattanproject.weebly.com/oppenheimer.html
그림 5. Werner Heisenberg Biography https://www.biographyonline.net/scientists/werner-heisenberg-biography.html